'광해군의 업적'에 해당되는 글 1건

광해군 업적 분석

반응형

광해군 업적 분석

 

광해군은 아주 훌륭한 왕이었음에도 인조 등에 의하여 폐위당하고

죽어서도 묘호를 갖지 못한 불운한 인물이었습니다.

 

연산군 역시 묘호를 갖지 못했지만,

그는 실제로 폭정을 했고, 왕위에서 쫓겨날만큼 인격적으로나

그릇으로나 모자람이 많은 왕이었습니다.

 

이에 비하여 광해군은 그의 행적에서 잘못된 부분을 눈씻고 봐도

그다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현명한 군주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단종의 경우는 죽어서 묘호를 받지 못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지금과 같은 묘호를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의 견해로는 광해군도 지금이라도 우리세대에서

국민투표를 해서라도 묘호를 주는 것이 현명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평양성에서의 항전

 

임진왜란 시절 선조는 왜군의 침략에 의해 한양을 버리고

의주까지 피난을 했습니다.

 

이때 광해군은 평양성에 기지를 차리고 왜군과 항쟁을 하는 투지를 보였습니다.

아버지가 하지 못한 일을 아들이 대신 하는 격이죠.

그에 의하여 선조의 자존심이 어느 정도 회복될 수 있었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당시 조정의 대신들 또한 자시 목숨을 지키기게 급급했는데

왕자로서 자신의 목숨보다는 국가나 백성을 위하는 모습은

광해군의 업적 중에서 가장 위대한 부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대동법의 실시

 

조선시대의 공물제도는 폐단이 아주 많아서 백성들에게

부담이 많았습니다. 이에 광해군은 한백겸을 시켜서 선혜청을 설치하게하고

공물을 특산물 대신에 쌀로 내게하는 대동법을 실시하는 업적을 세웠습니다.

 

이것은 군량미를 확보하는 방안도 될 수 있었고,

방납에 의하여 피해가 심한 백성들의 고충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되었습니다.

이외에도 이 시절에 허준에게 시켜서 동의보감을 짓게하여

백성들의 아픔을 조선의 약초를 이용하여 값싸게 해결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런 부분들로 그가 훌륭한 군주였다는 점을 증명할 수 있겠습니다.

 

실리외교

 

이 부분이 광해군이 당시의 대신들에게 미움을 받았던 부분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당시에 청나라는 떠오르는 나라였고,

명나라는 기울어지는 나라로 당시 조선의 힘으로 청나라에 대적하는 것은

사실상 이치에 맞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이에 광해군은 명나라의 원군요청을 거절하고 청나라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는데, 조정의 대신들의 대부분 명나라에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에 왜군을 피해서 도망치기에 급급했던 대신들이

정작 이런 상황에서 의리가 있는 척하는 모습은 참 아이러니 하죠.

 

결국 이들은 광해군이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인조를 내세워 반정을 하였으나,

결국 얼마 후에 청나라의 무력에 비굴하면서도 처절하게

적군앞에서 굴욕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항복을 했습니다.

 

 만약 광해군의 외교정책처럼 청나라와 우호관계를 맺었다면,

임진왜란 이후에 척박해진 조선의 땅에서 또 다시 이런 비극적인 상황을

맺는 일이 없었을 것이고, 당시 청국의 선진적인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조금 더 발전적인 조선의 모습이 되었을 것으로 느껴집니다.

 

반응형

'역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흥선대원군 쇄국정책 찬성 의견  (0) 2014.11.09
영조의 업적 분석  (2) 2014.09.30
세조의 업적과 나의 견해  (6) 2014.09.12
문종의 업적과 나의 견해  (0) 2014.09.11
태종 이방원 업적 살펴보기  (0) 2014.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