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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업적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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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업적소개

 

신라시대에는 3명의 여왕이 있었습니다.

통일이 되기 전에 선덕여왕과 진덕여왕, 그리고 통일이 이루어진 후에

진성여왕이었습니다. 이 중에서 선덕여왕 외에 두 분은 역사적인

업적이 그다지 않지 않아서 어떤 분인 지 잘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현재도 남성에 비하여 여성이 국가의 지도자가 되는 것은

드문 일인데, 그렇게 오래 전에 여성이 왕으로 추대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기도 하면서도 신기롭기도 한 일인듯 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

 

당시 신라는 골품제도라는 것이 있었고, 왕족은 성골출신이어야한다는

규칙이 있었습니다. 선덕여왕의 부친이신 진평왕은 슬하에 아들이 없었기에

신하들의 추대에 의하여 첫째 딸인 덕만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제도 상의 문제로 인하여 여자가 왕위에 오른 것이지만,

신라시대를 제외하고는 이런 경우는 전무하므로 대단히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후에도 여왕이 두분이 더 배출되었지만

그들의 존재도 선덕여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에서 최초이면서, 우리나라

여성의 자긍심을 올릴 수 있게하는 분인듯 합니다.

 

백제의 공격에 김유신을 시켜 막아냈다.

 

당시 백제와 고구려의 연합군에 의하여 신라는

외침에 많은 압박을 받았습니다. 이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은,

"여자가 왕이 되니, 다른 나라에서 신라를 무시하는 것이다."

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실상을 따져보면, 진흥왕이 백제의 영토를 공격하여

나제동맹이 깨진 이후에 자연스럽게 여제(고구려와 백제)동맹이 형성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신라가 고립되는 것이므로, 선덕여왕때문에

신라가 외침을 많이 받았다는 것은 옳지 못한 말입니다.

 

진흥왕의 업적에 대하여 살펴보고 싶으시면 아래를 클릭하세요.

http://yuki77.tistory.com/152

 

백제군이 신라에 침입이 잦아지고, 많은 성이 함락되면서

외기에 빠지자 선역여왕은 김유신을 시켜 이를 해결하도록 시켰고,

김유신은 백제에 빼앗긴 많은 성을 다시 회복하여,

그들에게닥쳐온 위기를 슬기롭게 대처하였습니다.

 

황용사 9층탑, 첨성대 건립

 

당시 선덕여왕에 대한 신하들의 충심이 썩 좋지 않은 편이라

자장법사의 권의에 의하여 황용사에 9층탑을 설립하였습니다.

이는 불교를 조금 더 활성화 시켜, 여왕의 권위를 세우고자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또한 기상관측과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한 첨성대를 건립

하였습니다. 첨성대는 다양한 측면으로 그 시대에 비하여

제법 과학적인 건축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삼국통일을 위한 기틀을 마련했다.

 

선덕여왕은 백성들을 위하여 다양한 좋은 정치를 펼쳤습니다.

또한 김유신과 김춘추 등의 삼국통일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이들의

정치적인 기반이 되었던 분이 선덕여왕이었습니다.

또한 선덕여왕은 굉장히 지혜가 좋았기에 다양한 부분에서

뛰어남을 보였고, 이를 증명하는 자료도 남아있습니다.

 

비록 오랫동안 왕위에 있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의 역사에

남을 만한 아름답고 훌륭한 여왕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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