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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왕 업적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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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왕 업적소개

 

문무왕 시대에 삼국통일을 이룩한 후에 그의 아들 신문왕 시대에는

공신들의 난에 의하여 왕권은 위태로운 상황이었습니다.

조선시대로 따지고 보자면,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이후에

태종이 왕위에 올랐을 때 개국공신들에 의하여 왕권이 위협을 받자

그들을 처단하게 된 것과 비슷한 경우인 듯 합니다.

 

왕의 입장으로서는 비록 공신이지만, 공통의 적이 없어진 후에는

그들이 왕위를 위협할 수 있는 두려운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공신의 입장으로 따지면, 왕을 위하여 온몸을 바쳐 충성을

다하였지만, 결국 사냥을 마친 개는 죽음을 당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지금부터 신문왕의 업적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반란군을 처형하고, 왕의 호위군을 늘려 전제왕권 강화

 

문무왕이 죽고, 신문왕이 즉위하자 함께 삼국통일을 위하여

힘써왔던 공신들의 반란을 모의했고 이를 알아차린 신문왕은 그들을

가장 우두머리부터 말단까지 모두 잡아들여서 처형하였습니다.

 

또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기존의 병부의 조직을 왕의 안전을 기할 수 있는

형태로 변경하였고, 시위부를 강화시키는 조치를 취하였습니다.

이로서 통일신라의 왕권이 서서이 안정이 되고,

긴 왕조의 시작을 알리는 발판을 마련하였습니다.

 

국학 설립하여 인재양성에 힘씀

 

국학은 당시 인재를 교육하고 양성하는 곳으로,

6두품 이하 출신아 관료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 마련하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진골이 직접 인재 고용에 참여하던

과거와는 달리 왕의 직권에 의하여 인재를 양성함으로써

진골세력을 견재할 수 있는 장치가 되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9주 5소경 제도를 마련하여 지방의 통제를 강화.

 

당시 수도였던 경주가 동남쪽에 치우쳐 있었기 때문에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장치가 되었고, 각 지역에 왕이 직접 임명하는

지방관을 파견하였기 때문에, 지방세력이 예전과 같이 왕권에

저항하는 경우가 없어지도록 하였습니다.

 

당시 수도였던 경주의 위치가 제가 생각하기로는 조금 이상한 위치로

통일이 이루어 진 후로는 수도록 변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되어집니다.

 

녹읍 폐지, 관료전 지급

 

지방관리에게 주었던 녹읍을 폐지하고 관료전을 지급하게 되었습니다.

이 당시는 왕권이 강하였기 때문에 이 정책을 시행하는데 지방관의

저항이 강하지 않았지만, 경덕왕 때는 다시 녹읍이 부활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이른 겅덕왕 시기에 왕권이 귀족보다 약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통일신라의 경제나 국력이

약화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여러가지 면에서 통일신라의 안정화와 왕권확립에

성공했던 신문왕은 그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이룩한 업적을 다지는 데

전혀 모자람이 없는 위대한 군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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