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 업적'에 해당되는 글 1건

영조의 업적 분석

반응형

영조의 업적 분석

 

드라마에 자주 출현하는 왕으로 영조가 속하죠.

드라마 '이산', '동이' 등에서 나왔고, 그외에도 아주 많이 나온것 같은데

잘 기억이 안나네요. 그만큼 영조시대가 다양한 사건이 많았고

드라마틱한 요소가 많았다는 이야기가 많았다는 뜻이겠죠.

 

조선시대의 중흥기를 이끄는 왕으로 영조와 정조를 일컫는데,

정조시대의 화려한 업적은 숙종, 영조시대에 기반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영조는 사도세자의 죽음에 의하여 약간 냉정한 왕의 이미지가 남아있는데,

정치적인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 합니다.

왜냐하면 그 외에 영조의 업적을 살펴보면

어느 것 하나 성군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곳이 없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결국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에게 세자로 임명하고,

왕위를 물려준 것으로 보아 사도세자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이 있었던 것은

아닌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무튼 그 부분이 조금 아쉽지만 그 외에는 조선시대의 어느 왕과 견주어도

모자람이 없는 가장 완벽한 군주였던 것으로 느껴집니다.

 

  

탕평책의 실시

 

선조시대부터 발생한 붕당은 숙종시대에도 계속 진행되었습니다.

이 시대에는 장희빈(남인)의 세력과 인현왕후(서인)의 정쟁이 아주 심했습니다.

결국 장희빈이 폐비가 됨으로써 남인은 몰락하고 서인은 득세를 하게 되었습니다.

 

남인을 강경하게 처벌하자는 세력은 노론으로 관대하게 처벌하자는 세력은 소론으로

나누어지게 되었는데, 이 세력은 영조시대에 정쟁이 심화되자,

노론과 소론에 관계없이 골고루 등용하는 정책으로

탕평책을 실시하는 업적을 세웠습니다.

 

이는 정조시대에도 계속되어 한쪽 세력에 치우치지 않아서

왕이 중립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조금 더 실속적인 정책을

내세우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균역법 실시

 

당시 군포는 2필을 내게 하였으나, 백성들이 사실상 부담하기 힘든 상황이라

1필로 줄여주는 균역법을 실시하였습니다.

 

당연히 군포를 절반으로 줄였다면, 그 부분을 보충하기 위하여 다른 부분에서

메울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영조는 다양한 방법으로 이 부분을 해결하였다고 합니다.

 

이 정책을 시행한 영조의 모습으로 세종대왕이 오버랩이 되는 것이

왠만한 왕이 아니면 실행하기 힘든 어질기도 하면서 추진력이 있는 모습인듯 합니다.

 

속대전 편찬

 

성종시대에 편찬한 경국대전은 영조시대에는 상황이 맞지 않은 부분이 많아서

새로운 법전을 편찬하였는데 그것이 속대전입니다.

 

한 나라의 법전의 편찬은 왕의 국가에 대한 질서를 다시 잡는다는 의미로,

영조가 새로운 속대전을 편찬한 것은 당시의 어려운 상황을 해결하여

조금 더 나은 모습으로 변모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가 포함된 것입니다.

 

 조선시대 법전편찬의 순서에 대하여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태조 - 조선 경국전, 경제육전

정종 - 속육전

성종 - 경국대전

영조 - 속대전

정조 - 대전통편

고종 - 대전회통

 

영조의 업적을 살펴본 결과 그는 신하들의 균형을 위하여 노력하였고,

백성들의 생활에 도움을 주려고 힘을 썼으며,

조선의 중흥을 위하여 그 누구 보다 앞장섰던 위대한 왕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