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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의 업적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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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의 업적소개

 

신라 말기 왕정은 백성에게 신망을 잃고 각지에서

민란이 일어났습니다. 그런 중에 예전의 고구려와 백제 지방을 중심으로

후고구려와 후백제를 세워 후삼국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아시겠지만 그냥 되짚는 형식으로

후고구려 - 궁예

후백제 - 견훤

이 새로운 왕조를 새웠습니다.

이 시대는 그렇게 오래 가지 못했고, 이들보다 더욱 뛰어난

영웅이 나타났으니 그가 왕건이었습니다.

 

여기서는 고려 태조 왕건의 업적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궁예의 장수가 되어 후고구려에서 많은 전공을 세웠다.

 

당시 송악을 근거지로 강력한 호족 세력을 이룬 왕륭의 아들로

궁예가 옛 고구려 지역을 회복하고자 정벌사업을 하는 동안,

송악의 왕륭과 왕건은 그의 부하로 복속되었습니다.

 

궁예의 장수로 있는 동안 많은 전투에서 전공을 세웠고,

그가 가장 총애하는 부하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궁예가 국호를 자꾸 변경하고,

호족들의 세력을 견제하고자 수도를 철원으로 옮기며,

스스로를 미륵이라고 칭하며, 약간 광적인 정치를 행하자

그의 수하들은 뜻을 모아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수장으로 모시게 됩니다.

 

신라에 친화정책, 후백제에 강경정책으로 통일을 이루었다.

 

당시 세력적으로 신라가 가장 약했으나,

왕건은 신라를 도우면서 후백제를 치는 방법을 선택하였습니다.

당시 신라는 백제나 타국의 침입이 잦았고, 이러한 상황을 왕건이

많이 해결해주면서 서서히 신라의 민심은 고려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신라왕이었던 경순왕은,

"저렇게 덕있는 자에게 머리를 굽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지금의 정세로서 어차피 고려가 통일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서 고려에 항복을 하게 되었습니다.

 

견원은 아들에 의하여 금산사로 갖히게 된 신세가 되었습니다.

"내가 아들을 저렇게 키웠으니, 나 또한 왕의 자격이 없다 할 것이다.

아들놈 또한 어질지 못한 성격으로 차라리 왕건에게 항복하고

그에게 힘을 보태주도록 하자."

그렇게 하여 견훤은 고려에 항복하게 되고, 자국을 치는

선봉으로 나와 얼마 후에 신검의 후백제는 멸망하게 되었고

고구려를 계승하는 통일국가를 이루는 업적을 세웠습니다.

 

흑창, 호족들과의 정략결혼 등으로 통일국가 정비

 

흑창은 빈민을 구제하고, 세금을 낮추도록 하는 제도였습니다.

 

비슷한 제도를 시대별로 정리해보면,

고구려 - 진대법

왕건 - 흑창

고려 성종 - 의창

이렇게 시대가 지남에 따라서 변하게 됩니다.

같은 제도지만, 그 시대의 상황에 따라서 조금은 더 발전된 제도로

만들어졌을 것임을 의심할 여지는 없습니다.

 

왕건은 또한 지방호족 간의 연합을 도모하여 왕실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호족들의 여인과 정략결혼을 실행하여 많은 왕자를 배출하였다고 합니다.

"장인어른, 딸은 왕실에서 잘지내니 아무 걱정 마십시오."

"내 딸이 왕실에 있으니, 나도 지방호족이지만 왕실의 사람이군."

이런 식으로 통일된 국가의 안정을 위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훈요10조를 지어 후대왕들에게 지키도록 하였다.

 

왕건은 스스로 훈요10조를 지어 다음 왕들이 그것을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불교를 숭상하도록 하고, 절을 쟁탈하는 일은 없도록 할 것이며,

적자적손이 왕손이 하지만 장자가 덕이 없으면 아우가 할 수 있다.

거란국은 발해의 적국으로 가까이 하지 말 것이며,

서경을 중시하고, 연등회와 팔관회의 행사에 소홀하지 말 것이다.

왕으로서 덕치정치를 하여 민심을 얻을 것이며,

그가 정해 준 특정지역의 인재는 등용하지 말고,

관리들의 기록은 정확하게 하고,

많은 경서와 사기를 참고하여 현재에 최선을 다하여라."

 

조선 태조 이성계의 업적을 보고 싶으면 아래를 클릭하십시오.

http://yuki77.tistory.com/112

 

왕건에 비하여 이성계는 시대가 조금 더 지나서 보다 세련되게

조선왕조를 개설한 바는 있지만, 왕으로서의 능력은 왕건이 조금 앞서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이성계는 강하면서 카리스마가 넘치는 스타일의 왕이었다면,

왕건은 강약을 잘 조절했던 융통성있는 왕이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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