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6. 6. 22:18 역사 이야기
지증왕의 업적소개
신문에 아주 많이 나오는 왕,
그가 원한 것은 아니지만 노래가사에까지 나왔던 분,
그 분이 지증왕입니다.
일본이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면,
"지증왕 시대 때 우산국을 정벌했다는 걸 모르냐?
자꾸 말도 안되는 소리로 우길래?"
이로 인하여 생긴 노래는 전 국민이 애국심으로 부르는 노래죠.
"지증왕 13년 섬나라 우산국 세종실록 지리지 50페이지 3째줄......."
이 노래를 불러보면, "이래서 독도는 우리땅이구나"
하고 초등학생도 알 수 있는 아주 정겨운 노래죠.
신라의 국호, 왕의 칭호를 처음 사용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신라라는 국호를
처음 사용했던 왕이 지증왕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삼한시대 때는 진한으로 이사금 시대 때는 계림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국호자체가 예전에 비하여 교류로 인하여
한자를 사용한 국호 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때 부터 처음으로 왕이라는 칭호는 사용하였습니다.
이 칭호 또한 중국식의 표현이었고, 왕이 죽은 후에 시호를
사용하는 것 또한 이때부터라고 합니다.
주군현 제도, 상복제도를 도입
삼국의 다른 나라에서는 제도를 정비함에 있어서
한명의 왕이 주도적으로 완성한 것을 알 수 있는데,
신라는 지증왕 시기부터 법흥왕 때까지 중앙집권을 위한
체제의 정비가 계속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주군현을 나누어서 지방을 조금 더 체계적으로
다스리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또한 상복제도를 도입하여
왕실의 예법을 강화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농업을 장려하고, 순장제도 폐지
백성들에게도 베품이 이어졌으니, 농업을 장려하여
밥을 굶는 일이 줄어들도록 하였고, 이로 인하여 왕실은 세금을
더욱 많이 받을 수 하여 재정이 확충하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당시에 높은 분이 죽었을 경우, 이를 따르던 사람들까지도
함께 무덤에 묻던 순장제도가 존재하였습니다.
이는 살아있는 사람을 생매장 하는 것으로
야만적인 행위라는 생각으로 순장제도를 폐지하였습니다.
우산국 정복
이 시기에 지금의 울릉도 땅인 우산국을 정벌하였고,
이 때 주변의 작은 섬인 독도까지 신라의 영토로 편입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역사책에 기록이 되어 있는 것으로, 독도가 우리땅이라는
증거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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