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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 업적 집중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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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 업적 집중분석

 

진시황이 죽고 50년 이후에 한고조 유방이 태어났다고 하며,

그가 군림하던 시기에 우리나라는 고조선의 말기 시대였습니다.

 

진나라은 당시에 막강한 전력으로 전국을 통일한 후에

고조선을 칠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나

운좋게도 진시황이 죽자마자 나라가 혼란에 쌓여서

얼마지나지 않아서 진나라도 멸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최초의 중국 통일, 황제 칭호 사용

 

현재 중국은 티벳에서부터 만주지방까지 어마어마한 영토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원래부터 하나의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만약에 진시황이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현재 중국은 최소한 10개 이상의 나라로 나누어져 있을 가능성이 높겠죠.

원래 처음이라는 것이 중요한 법이니까요.

 

그의 아버지가 왕위에 오르는 데 큰 힘이 된 여불위는

진시황이 왕이 되자 개국공신으로서 오히려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결국 여불위는 자신의 야심을 숨기지 못하고 모반에 가담해서 벼슬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그 후부터 그는 주위의 여러나라들을 하나씩 복속을 시켜서

마침내 중국을 하나로 만드는 광대한 영토를 차지하게 됩니다.

 

이것이 결국 현재의 '중국'이라는 나라의 하나의 모태가 되겠습니다.

그런 의미로 진나라의 전국통일을 진시황의 대단한 업적이라 할 수 있겠죠.

 

그리고 그는 다른 왕들과는 다른 더 대단한 호칭을 원했고,

삼황오제라는 명칭을 요약하여 스스로 황제라고 부르도록 했습니다.

 

중앙집권강화의 체제로 개혁함

 

그전까지의 봉건제도에서 군현제로 변화시킵니다.

 

지방에 제후라는 명목으로 세습을 하면서 자신의 군사를 가진

구시대적인 지방제도는 왕권을 크게 위협했습니다.

이에 대한 방비책으로 새로 도입한 제도였고,

이것은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채택이 되는 나름 괜찮은 지방제도였습니다.

 

전국의 문자, 도량형을 통일시키고

중국 전체를 통하는 도로망을 건설하여 하나의 왕국이 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결국 이전까지는 문화자체가 서로 많이 달랐고,

하나의 나라와 민족으로서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겠죠.

 

오랑캐의 침입에 대비하여 막대한 인력을 사용하여

현재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불가사의한 문화재로 통하는 만리장성

진시황의 멋들어진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요.

 

강하지만 착하지 못했던 황제

 

그에 대한 역사적인 내용들을 읽어보면 대체로 좋지 않은 평이 많아보입니다.

그럼 왜 이렇게 그를 훌륭하지 못한 왕으로 보게 된 것인가를 분석해 보아야겠죠.

 

무엇보다 왕권강화를 위해서 실행된 분서갱유가 가장 큰 원인이 아닌가 느껴집니다.

그는 유학을 진나라를 위해서 좋지 못한 학문으로 보고,

각 지방에 있는 학자들의 서적을 모두 태우도록 명했다고 합니다.

 

공자와 맹자를 최고의 스승으로 모시고 있던 그들에게

그러한 정책을 펼친 것은 아무래도 많은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커겠죠.

 

또한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 펼친 많은 공사들은

그 규모가 지나치게 커서 백성들은 아마도 이에 대한 부담이 굉장했을 것입니다.

 

"밥도 제대로 못먹는데 만리장성이 왠말인가!!"

"우리는 집도 빗물이 새는데, 왕은 죽기도 전에 궁궐같은 무덤이 말이 되나?"

 

아마도 그의 공사에 가담한 백성들이라면 이런 불만을 펼쳤을 가능성이 커겠죠.

천하를 통일할 때의 영웅적인 모습은 대단했지만,

왕에 된 후에 그의 정책들은 오랜 세월을 유지할 만한 왕조의 모태를 만들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던 것으로 느껴집니다.

 

그의 사후에 얼마지나지 않아서 결국 진나라도 멸망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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