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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 업적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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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 업적 소개

 

이씨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사적으로 약간의 아쉬움과

함께 조선건국의 업적에 대해서는 대단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공존합니다.

당시, 고려왕조가 워낙 불안하였고, 왕권이 안정되지 못하였기에 주변 정황상으로

우리나라 또한 새로운 왕조가 새워지는 것은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닌듯 합니다.

하지만 그 기회에 조금만이라도 우리나라 영토를 확장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홍건적에게 함락된 개경을 수복하는 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원나라와의 전투에서 퇴패한 홍건적은 그 잔재세력이

고려를 침입하였고, 군사의 수가 많았기에 공민왕은 잠시 다른 곳으로

피신하는 곤경에 처하였습니다. 그때 이성계는 자신의 2000여명의 군사로

개경을 수복하는 전투에서 일조하였다고 합니다.

 

당시에 이성계의 직위가 크게 높지 않았기에

많은 병력을 보유하지는 못해 적은 병력이었지만,

자신의 위치에서 고려를 위해 나름대로 큰 일을 했던 것입니다.

 

덕흥군의 병력을 몰아내고 공민왕을 도왔습니다.

 

당시 원나라에서는 공민왕을 못마땅하게 여겨, 고려의 새로운

왕으로 덕흥군을 임명하여 병력을 몰고 고려를 침입하였으나 이성계 등은

이 병력을 섬멸하여 공민왕의 왕위를 지키는 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당시 고려 장수로는 최영과 이성계가 함께 북방을 지켰으며,

이 두사람의 관계는 나중에 조선의 건국과 함께 서로 상반되는

모습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여진족과 왜구를 몰아내는 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여진족이 북방에서 소란을 많이 피웠고, 한때 함주까지 장악하기도

하였으나 이성계가 이들을 몰아내었습니다. 남쪽 지방에서는 왜구가 각지에

침범하여 어지러웠으나 이들을 격파하여 고려의 안정을 위해 힘썼습니다.

 

당시에는 고려의 국력도 신장했으나 원나라의 쇄퇴로 인하여 각지에

많은 오랑캐가 침몰하여 안팎으로 어려움이 많았으나 이를 해결하는 데

이성계와 최영의 공이 지대했다고 합니다.

 

조선을 건국하였습니다.

 

우왕은 요동을 정벌하라는 명령을 이성계에게 내렸으나, 이를 반대하고

회군하여 우왕을 죽인 후에 창황, 공양왕을 차례로 왕으로 임명한 후에 자신의

기반을 어느 정도 잡은 후에 조선을 건국하게 되었습니다.

 

위화도회군을 했던 의도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정확한 정황을

파악하기는 힘드나 당시에 고려의 병력에 비하여 명나라의 병력이 훨씬

막강하였기에 내린 결정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조선'이라는 국호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단군의 '조선'

이래에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다시 사용하게 되는 우리나라의 국호

였습니다. 만약,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지 않았다면, 당시의 어지럽던 고려의

상황을 정비하는 데 시간이 오래 렸을 것이고, 국력의 통일성을 유지하지 못하여

계속적인 외세의 침입을 받아서 많은 어려움을 당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하기에 위화도회군은 약간 아쉬움이 있지만, 조선시대

이후로 다시 왕권이 안정되고 여러가지 면에서 안정을 되찾은

우리나라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이성계의 새나라 건국은

나쁘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조선왕조의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

 

새로운 왕조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개성에서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고, 법제를 정비하여 고려시대에서 약간 부족했던 부분을

보충하려고 애썼으며, 숭유억불정책을 내려 왕을 중심으로 하는

유학의 정치는 조선왕조 500년의 근간이 되고, 어지럽던 질서를 되찾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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